1919 — 1945 · 대한민국 임시정부

교과서엔 없던 이름들,
임시정부를 지킨 여성들
이야기를 찾아서

시드니에서 우연히 알게 된 이야기 하나가 저를 여기까지 데려왔습니다.
알면 알수록 궁금해지는, 역사 속 그들의 진짜 이야기.

시드니 한인 역사 자료를 조사하는 모습

시드니에서, 몰랐던 역사를 찾아가는 중

솔직히, 저도
잘 몰랐어요

안녕하세요. 시드니에서 대학을 다니는 교포 2세입니다. 한국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신정숙 지사 이야기를 접하고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내가 사는 시드니에서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운 호주 선교사들이 있었고, 여기서 활동한 독립운동가가 있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조사하다 보니 임시정부를 지킨 여성들의 이야기까지 닿게 됐습니다.

더 놀란 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분이 17,000명이 넘는데 그 중 여성은 겨우 3.5%라는 사실이었어요. 그래서 찾아보기 시작했고, 이 페이지를 만들게 됐습니다.

— 시드니에서, 아직 배우는 중인 한 사람
17,541
전체 독립유공자 수
622
이 중 여성 (3.5%)
26년
임시정부 존속 기간
~8,000리
상해→충칭 피난 거리

아이를 업고, 문서를 품고,
8,000리를 걸었다

임시정부는 한 곳에 머물지 못했어요. 일제의 추격을 피해 중국 대륙을 횡단해야 했고, 그 길 위에 여성과 아이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아래 도시를 클릭해보세요.

四川 湖北 湖南 江西 江蘇 浙江 福建 廣東 廣西 貴州 山東 武漢 南昌 福州 香港 ~180km ~200km ~900km ~800km ~700km 출발 도착 상해 上海 1919–1932 항저우 杭州 1932 전장·난징 1935 창사 長沙 1937 광저우·류저우 1938 치장 綦江 1939 충칭 重慶 1940–1945 N ~500km
도시를 클릭하면 그곳에서의 이야기를 볼 수 있어요
1919–1932
상해 上海
시작의 도시
1932
항저우 杭州
첫 번째 피난
1935
전장·난징
잠깐의 안정
1937
창사 長沙
대화재의 밤
1938
광저우·류저우
끝없는 행군
1939
치장 綦江
다시 모이다
1940–1945
충칭 重慶
마지막 거점

상해 — 모든 것이 시작된 곳

1919년 임시정부가 세워진 상해. 여성들도 처음부터 함께했어요. 대한애국부인회가 만들어졌고, 정정화 같은 여성들은 국내와 상해를 오가며 독립자금을 몰래 날랐습니다. 프랑스 조계지의 좁은 셋방에서 임시정부 요인들의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연락 업무를 보는 것 — 그게 이 시기 여성들의 일상이었어요.

💬 이때부터 이미 '살림'과 '투쟁'의 경계는 없었던 거죠.

항저우 — 급박했던 첫 번째 피난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일본의 추적이 거세졌어요. 임시정부는 급하게 항저우로 이동했고, 여성들은 중요 문서와 인장을 몸에 감추고 아이들을 데리고 은신처를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짐을 싸야 했던 밤이 한두 번이 아니었대요.

💬 이때 잃어버린 짐 속에 소중한 사진이나 편지가 있었을 텐데...

전장·난징 — 잠깐의 숨 고르기

중국 국민당의 도움으로 잠시 머물 수 있었지만, 경제적 어려움은 계속됐어요. 여성들은 중국어를 배워서 현지 사회와 소통하기 시작했고, 아이들 교육도 직접 맡았습니다. 한국어를 잊지 않게, 한국 역사를 잊지 않게.

💬 교포 2세로서 이 부분이 특히 와닿았어요. 언어를 지키는 것의 무게.

창사 — 불바다 속의 탈출

1938년 창사 대화재. 도시 전체가 불에 휩싸인 밤, 임시정부 가족들은 목숨을 걸고 탈출해야 했어요. 이 과정에서 어린 자녀를 잃은 가족도 있었습니다. 상상이 안 돼요, 아이를 안고 불길을 뚫고 달려야 했던 그 공포가.

💬 이런 이야기는 정말... 교과서에서는 한 줄도 못 봤어요.

광저우·류저우 — 멈출 수 없는 발걸음

일본군 폭격을 피해 남쪽으로, 또 서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피난에 모두가 지쳐갔지만, 여성들은 노약자와 아이들을 돌보며 행군을 이어갔어요. 부족한 식량과 약 속에서 간호와 취사를 도맡고, 공동 식사를 조직하고,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 걸으면서도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니. 그게 저항이었던 거죠.

치장 — 다시 모여 조직을 만들다

충칭 인근 치장에 도착한 여성들은, 피난만 다니던 시기를 벗어나 본격적으로 단체 활동을 시작했어요. 한국혁명여성동맹 같은 조직이 이때 결성되었고, 여성들의 독립운동이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 어떤 상황에서도 조직을 만들고 연대한다는 게, 정말 대단해요.

충칭 — 드디어, 해방을 맞다

임시정부의 마지막 거점. 여기서 여성들의 활동은 절정에 달했어요. 한국광복군에 여성 대원들이 입대해서 적진 선전 방송, 암호 해독, 포로 심문 같은 군사 활동에 직접 참여했습니다. 1945년 해방 소식을 들었을 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 26년을 버틴 끝에 들은 해방 소식... 울었을까, 웃었을까.

이 분들을 소개합니다

'누구의 아내'가 아니라, 각자의 이름으로 기억되어야 할 분들. 카드를 클릭하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어요.

우리가 놓치고 있던 것들

🍚

밥 한 끼가 곧 투쟁이었다

임시정부 요인들이 활동할 수 있었던 건 누군가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아픈 사람을 돌봤기 때문이에요. 그 '누군가'는 거의 항상 여성이었고, 이 노동은 '독립운동'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

총만 든 게 아니었다

광복군의 여성 대원들은 일본어로 적진에 선전 방송을 하고, 암호를 해독하고, 포로를 심문했어요. 일본어에 능통한 여성들은 심리전의 핵심 인력이었습니다.

🕯️

기록되지 않은 상실들

피난 도중 태어나 얼마 못 살고 죽은 아이들, 영양실조로 쓰러진 여성들, 남편을 잃고도 임시정부에 남은 여성들. 이런 이야기는 공식 역사에 거의 남아있지 않아요.

✉️

여자라서 가능했던 임무

일제의 감시가 남성에게 집중된다는 점을 전략적으로 이용해, 여성들이 독립자금과 비밀 문서를 운반했어요. 정정화가 13차례나 국내를 오간 것도 이런 맥락이었습니다.

시드니에서 발견한,
잊혀진 이름들

바로 이 이야기가 모든 것의 시작이었어요. 시드니에 살면서도 전혀 몰랐던, 한국의 독립운동과 호주 사이의 깊은 연결고리.

시드니의 광복군 · 1917–1997

신정숙 지사 — "우리 곁에 계셨던 광복군 할머니"

1917년 충북 보은에서 태어나, 한국광복군 부녀대원으로 심리전과 선전 활동에 참여했어요. 1970년대 후반 자녀를 따라 시드니로 이주해 약 20여 년간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1997년 시드니에서 별세했고, 2001년 유해가 한국으로 봉환되어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어요.

교민들은 그분을 이렇게 기억합니다 — "평범한 이웃 할머니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총을 들고 싸우셨던 독립군이었다."

호주 주류 언론에서 그분을 다룬 기사는 거의 없어요. 20년을 시드니에서 사셨지만, 호주 사회는 이 분의 존재를 몰랐고, 지금도 모릅니다.

직접 검색해 보세요

20년을 시드니에서 사신 분인데, 호주 언론에 기록이 있을까요? 아래 검색어를 구글에 넣어 보세요.

"Shin Jeong-suk" Sydney "신정숙" 호주 "신정숙" 시드니 Korean independence fighter Sydney

아무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광복군 출신 독립유공자가 이 도시에서 20년을 살다 돌아가셨는데, 호주 어디에도 기록이 없어요. 이것이 제가 이 페이지를 만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부산 일신여학교 · 호주 선교사들

한국의 독립을 도운 호주 여성들

부산 일신여학교를 중심으로 활동한 호주 선교사들이 3·1운동 당시 학생들의 독립운동을 직접 도왔어요. 한국 정부는 이들에게 훈장을 수여했고, 호주 언론도 이를 '한국의 독립을 도운 호주의 영웅들'로 보도했습니다.

이사벨라 멘지스

Belle Menzies · ?–1935

일신여학교 설립자. 3·1운동 때 학생들을 보호하고 태극기 제작을 도왔어요.

마거릿 데이비스

Margaret Davies · ?–1963

일신여학교 교장. 학생들의 만세 시위를 지원했어요. 멜버른에서 별세.

데이지 호킹

Daisy Hocking · ?–1971

만세 시위에 함께 참여하다 일제에 체포되기까지 했어요.

호주에는 아직, 이들을 기리는 곳이 없습니다

신정숙 지사가 20년을 살았던 시드니에도, 멘지스와 데이비스가 돌아간 호주 땅 어디에도, 이들을 기억하는 기념비나 기념시설은 없어요. 호주 한인 사회에서는 추모 행사를 해왔지만, 호주 사회 전체로 보면 이 역사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호주 선교사들이 한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을 때 잠깐 보도된 것 외에는, 호주 주류 언론의 관심도 거의 없었어요. '해외에서 잊혀져 가는 독립운동가'라는 표현이 딱 맞는 상황입니다.

💬 같은 도시에 살면서 이 이야기를 몰랐던 제가, 지금이라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기념비가 없다면, 이 페이지라도.

혼자가 아니라, 함께 싸웠다

1919
대한애국부인회
임시정부 수립 직후 만들어진 여성 독립운동 단체. 독립자금 모금, 적십자 활동, 독립군 가족 돌봄을 했어요.
김순애, 이화숙, 오의순 등
1919
대한민국애국부인회 (국내)
국내에서 비밀리에 독립자금을 모아 임시정부로 보내는 일을 했습니다. 발각된 뒤 주요 회원들이 감옥에 갇혔지만, 지하 활동은 계속됐어요.
김마리아, 황애시덕 등
1940
한국혁명여성동맹
충칭에서 좌파·우파 여성들이 함께 만든 단체. 항일 선전, 광복군 지원, 여성 교육을 체계적으로 했습니다.
방순희, 김정숙, 연미당 등
1943
한국애국부인회 (재건)
충칭에서 다시 세워진 부인회. 광복군 후원, 선전물 제작, 부상 군인 간호 등 해방 직전까지 활동했어요.
김순애, 방순희 등

저도 이 자료들로 공부했어요

회고록

장강일기 — 정정화

임시정부와 함께한 26년. 여성의 시선으로 쓴 임시정부 생활의 가장 생생한 기록이에요. 이 책 진짜 추천합니다.

교보문고에서 보기 →
공식 아카이브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 조서와 사진을 볼 수 있어요. 이름을 검색하면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나옵니다.

e-gonghun.mpva.go.kr →
원문 자료

대한민국임시정부 자료집

국사편찬위원회 발행. 원문 사료를 직접 볼 수 있고, 여성 관련 문서도 꽤 포함되어 있어요. 전문 디지털화 완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검색 시스템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독립기념관에서 운영하는 통합 검색. 인물 사전, 사진, 기증 자료, 도록까지 인물별 활동 내역이 잘 정리되어 있어요.

search.i815.or.kr →
기념관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2022년 개관. 디지털 아카이브와 메타버스 체험 공간이 있어요. 서울 서대문구, 무료 입장.

nmkpg.go.kr →
백과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임시정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운영. 임시정부와 여성 독립운동가 항목이 학술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어요.

encykorea.aks.ac.kr →
기념사업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여성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기념 문화제, 만주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 세미나 등을 진행하고 있어요.

herstorykorea.org →
온라인 전시

독립기념관 디지털 기념관

VR 전시관, AI 디지털 휴먼 전시관까지. 2025년 광복 80주년 기념으로 AI로 복원된 독립운동가와 대화도 가능해요.

i815.or.kr/digitalHall →
온라인 강의

독립기념관 교육정보서비스

무료 온라인 강좌. "대한민국의 시작: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 30일 과정. 해외에서도 수강 가능해요.

learn.i815.or.kr →
박물관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유관순 열사가 수감된 여옥사 8호실을 직접 볼 수 있어요. 메타버스 체험과 홀로그램 전시도 운영 중.

sphh.sscmc.or.kr →
호주 관련 (한국어)

호주 선교사들, 3월의 독립운동가 선정

멘지스, 데이비스, 호킹 — 부산 일신여학교에서 3·1운동을 도운 호주 선교사들의 이야기. 2024년 경향신문.

경향신문 기사 →
호주 관련 (English)

Korean Awards for Australian Missionaries

Presbyterian Church of Victoria — 한국 정부 훈장을 받은 호주 여성 선교사 3명의 이야기. Belle Menzies는 호주 총리 Robert Menzies의 이모였어요.

pcv.org.au →